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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절망과 기괴함 - "역병의 바다 " - 김보영

by 캐나다 슬로그 2022. 8. 9.

최근 밀리의 서재를 구독하게 되면서 많은 책들을 접하게 되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소설보다 오히려 논픽션만 읽는 굉장한 편식가였는데 살다 보니 소설이 주는 위안을 깨달았다. 교양서적은 지식이 쌓이면서 내 현실이 더 견고 해지는 느낌이라면 소설은 나에게 휴가 같은 느낌이랄까. 그렇게 집어 들은 건 김보영 작가의 SF/공포 소설 "역병의 바다"이다. 

 

줄거리

주인공 무영은 경호원으로 조카와 동해로 여행을 떠난다. 무뚝뚝해 보이는 무영이지만 조카는 엄마보다 이모를 더 좋아할 만큼 애틋하다. 출발 직전 도착지인 동해에서 재난이 일어났다는 뉴스가 발송된다. "동해안 해원항 10킬로미터 지점 강도 6.2 지진.... 역대급 / 주민 대피령 / 여진 가능성 / 수온 급격 상승 / 해저화산 분출 가능성 / 해상에 나간 선박 모두 귀항 조치". 하지만 모두가 그렇듯 머뭇거리며 일정대로 기차에 탑승해 동해로 향한다. 무영은 이때를 매일 곱씹으며 후회에 좌절한다.

 

그리고 삼 년 후 현재. 무영은 동해 해원마을에 3년째 지내고 있다. 마을은 재난으로 인해 쓰레기와 폐플라스틱으로 뒤덮인 지 오래. 알 수 없는 "동해병"이라는 전염병마저 돌고 마을에 갇혀 반쯤 미쳐버린 사람들과 병으로 인해 사람의 형상조차 안 하고 있는 환자들만이 남아있다. 무영은 마을의 자경단으로서 자가격리를 지키지 않는 환자들과 사투를 벌이는 일상을 보낸다. 어느 날 외부인이 전혀 왕래를 할 수 없는 이곳에 웬 멀끔한 사람이 나타난다. 본인이 연구소 직원이라며 현장 조사를 위해 나왔다는데... 마을의 실상을 너무 깊이 알아버리게 된다.

 

감상

러브크래프트를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그의 허무주의적인 공포관은 내가 참 좋아한다. 인간은 재앙 앞에 너무나 무력하고 이해조차 불가능 하다는 것... 영화에서도 그 무시무시한 괴물이나 귀신이 왜 생겨났는지, 왜 나쁜 짓을 벌이는지 설명이 되는 순간 공포적 존재보단 공감을 할 수 있는 인물이 되어 버리는 것 같다. 호불호가 극심하게 갈리는 미스트도 내가 참 재밌게 봤었었다. 생각해보면 이런 인간의 무기력이란 주제를 흥미로운 소재로 바라볼 수 있는 것도 특권은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한 발 치 멀리에서 경험하고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으니..!

 

"역병의 바다"에서 역시 독자는 납득 되지 않는 상황에 빠져버린다. 이해할 수 없는 역병. 주인공과 대립구도를 이루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마을 사람들. 어떠한 현실적인 도움을 주지 않는 정부. 이런 거지 같은 삼위일체 속에서 나라면 미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논리적으로 이해하던 것들이 파괴된다는 것은 인간에게 어떤 절망으로 다가오는 것일까?

 

코로나가 처음 발병했을 때가 떠오르기도 했다. 병에 걸린 자와 걸리지 않은 자. 알 수 없는 병으로 사람들이 픽 픽 쓰러지는 영상들이 틱톡에서 퍼져나갔고 동네에선 아시안 몇몇을 보고 "쟤가 중국 어디 출신이라더라" 며 소문이 돌았다. 백신도 나오지 않았을 때 미지의 것들에 대한 공포와 해외 살면서 현지인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생각했든 것들이 떠오르면서 더 오싹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이 책은 러브크래프트를 오마주하여 현대적인 시각으로 재창조하는 "Project LC.RC"의 작품으로 다른 분들의 작품도 얼른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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