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밀리의 서재를 구독하게 되면서 많은 책들을 접하게 되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소설보다 오히려 논픽션만 읽는 굉장한 편식가였는데 살다 보니 소설이 주는 위안을 깨달았다. 교양서적은 지식이 쌓이면서 내 현실이 더 견고 해지는 느낌이라면 소설은 나에게 휴가 같은 느낌이랄까. 그렇게 집어 들은 건 김보영 작가의 SF/공포 소설 "역병의 바다"이다.
줄거리
주인공 무영은 경호원으로 조카와 동해로 여행을 떠난다. 무뚝뚝해 보이는 무영이지만 조카는 엄마보다 이모를 더 좋아할 만큼 애틋하다. 출발 직전 도착지인 동해에서 재난이 일어났다는 뉴스가 발송된다. "동해안 해원항 10킬로미터 지점 강도 6.2 지진.... 역대급 / 주민 대피령 / 여진 가능성 / 수온 급격 상승 / 해저화산 분출 가능성 / 해상에 나간 선박 모두 귀항 조치". 하지만 모두가 그렇듯 머뭇거리며 일정대로 기차에 탑승해 동해로 향한다. 무영은 이때를 매일 곱씹으며 후회에 좌절한다.
그리고 삼 년 후 현재. 무영은 동해 해원마을에 3년째 지내고 있다. 마을은 재난으로 인해 쓰레기와 폐플라스틱으로 뒤덮인 지 오래. 알 수 없는 "동해병"이라는 전염병마저 돌고 마을에 갇혀 반쯤 미쳐버린 사람들과 병으로 인해 사람의 형상조차 안 하고 있는 환자들만이 남아있다. 무영은 마을의 자경단으로서 자가격리를 지키지 않는 환자들과 사투를 벌이는 일상을 보낸다. 어느 날 외부인이 전혀 왕래를 할 수 없는 이곳에 웬 멀끔한 사람이 나타난다. 본인이 연구소 직원이라며 현장 조사를 위해 나왔다는데... 마을의 실상을 너무 깊이 알아버리게 된다.
감상
러브크래프트를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그의 허무주의적인 공포관은 내가 참 좋아한다. 인간은 재앙 앞에 너무나 무력하고 이해조차 불가능 하다는 것... 영화에서도 그 무시무시한 괴물이나 귀신이 왜 생겨났는지, 왜 나쁜 짓을 벌이는지 설명이 되는 순간 공포적 존재보단 공감을 할 수 있는 인물이 되어 버리는 것 같다. 호불호가 극심하게 갈리는 미스트도 내가 참 재밌게 봤었었다. 생각해보면 이런 인간의 무기력이란 주제를 흥미로운 소재로 바라볼 수 있는 것도 특권은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한 발 치 멀리에서 경험하고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으니..!
"역병의 바다"에서 역시 독자는 납득 되지 않는 상황에 빠져버린다. 이해할 수 없는 역병. 주인공과 대립구도를 이루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마을 사람들. 어떠한 현실적인 도움을 주지 않는 정부. 이런 거지 같은 삼위일체 속에서 나라면 미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논리적으로 이해하던 것들이 파괴된다는 것은 인간에게 어떤 절망으로 다가오는 것일까?
코로나가 처음 발병했을 때가 떠오르기도 했다. 병에 걸린 자와 걸리지 않은 자. 알 수 없는 병으로 사람들이 픽 픽 쓰러지는 영상들이 틱톡에서 퍼져나갔고 동네에선 아시안 몇몇을 보고 "쟤가 중국 어디 출신이라더라" 며 소문이 돌았다. 백신도 나오지 않았을 때 미지의 것들에 대한 공포와 해외 살면서 현지인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생각했든 것들이 떠오르면서 더 오싹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이 책은 러브크래프트를 오마주하여 현대적인 시각으로 재창조하는 "Project LC.RC"의 작품으로 다른 분들의 작품도 얼른 읽어보고 싶다.
'일상 | Daily Thoughts > 취미 | Hobby'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도 커서(?) 이런 어른이 되어야지 - "어른답게 삽시다" - 이시형 (0) | 2022.11.07 |
---|---|
[영화 리뷰] 이스트반 반야이의 요상한 단편영화- Gobble-Gobble (0) | 2022.05.02 |
30초 인물 크로키 - 2022년 1월, 첫 2주 (0) | 2022.01.31 |
댓글